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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힙합이란

 

힙합(hip hop)은 DJ Kool Herc라는 자메이카계 미국 청년이 1973년 뉴욕 브롱스에서 파티를 열 때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레게의 동생뻘로 불린다.

80년대에는 힙합에는 3대 요소가 있다고 했다.DJ,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가 그 구성 요소이다.현재는 뮤지션으로서의 MC를 더한 4대 요소로 알려져 있다.히프는 멋있고 날고 있음, 홉은 도약하는 등의 의미가 있다.스티브 헤이거는 아프리카 범버터2의 랩 음악과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 아트를 포함한 흑인 문화를 힙합이라고 한 발언은 빌리지 보이스에서 최초로 활자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프레이 캔(락카)으로 그래피티
단순히 "힙합"이라고 불렀을 경우 샘플링이나 몰입의 백트랙에 MC에 의한 랩을 얹은 음악 형태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힙합뮤직 혹은 랩뮤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으며 브레이크댄스나 그래피티 등을 더한 것이 본래의 힙합이다.힙합에서 랩(MC), DJ플레이, 브레이크댄스, 그래피티는 4대 요소로 불린다.

이들은 미국의 거리 갱 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항쟁을 무혈로 끝내기 위해 총과 폭력 대신 브레이크댄스와 랩의 우열을 다투기도 했다.랩, DJ플레이, 브레이크댄스에는 프리스타일 배틀로 불리는 대결방식도 존재한다.그 후 발상지 미국에서만 그치지 않고 취미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거나 그래피티를 예술로 포착하는 움직임도 있으며, 패션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등 힙합 문화는 구미,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아프리카 범버타가 추가한 '지식'까지를 5대 요소, 나아가 KRS 원이 제창한 '비트박스'와 거리문화 '언어', '복장', '창업정신'을 포함하면 9대 요소라고 불린다.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1970년대에 태어나 쿨·하크[4](브레이크비트의 발명자), 그랜드 마스터·플래시(스크래치 기술을 보급), 아프리카·밤버터(힙합이라는 말의 생부모) 등의 DJ들의 활약에 의해서, 지금까지의 블록·파티를 초월한 음악으로서 퍼지기 시작했다.

곡조 댄스 패션 등의 스타일을 각각 올드 스쿨(Old School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뉴 스쿨(New School, 1990년대 이후)이라고 부른다.올드스쿨 래퍼로는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 토리 채러스 쓰리, 슈퍼울프 등이 있었다.1980년대 후기 - 1990년대 전기는 랩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특히 골든에이지 힙합으로 불리기도 한다.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의 랩을 미들 스쿨(Middle School)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미들 스쿨의 래퍼로는 Run-D.M.C., LL 쿨 J, UTFO, 후디니 등이 있었다.

Run-DMC의 잇츠라이크 댓과 퍼블릭 에너미의 앨범은 사회적 의식의 싹을 예감케 했다.1980년대 힙합은 비트박스의 보컬 퍼커션 테크닉을 통해 인체를 사용한 리듬 작성도 받아들였다.선구자는 더그 E 프레시파였다.더그 E 프레시와 비즈 맥키는 자신의 입, 입술, 혀, 음성 및 다른 신체 부분을 사용해 비트, 리듬, 그리고 음악적인 소리를 만들었다.이들은 휴먼비트박스로 불렸으며 이 장르의 가수들은 턴테이브리즘의 스크래치나 기타 악기들의 소리를 노래하거나 악기 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의 등장은 엔터테인먼트를 바꿨다.그들은 자주 도시 근처를 칭찬했습니다."플래닛 록"의 뮤직비디오는 힙합뮤지션, 그래피티 아티스트 및 b-boy/b-girl의 서브 컬처를 소개했다.198285년 사이에 와일드 스타일 비트 스트리트 크래시 그루브 브레이크 댄스 다큐멘터리 스타일 워즈 등 많은 힙합 관련 영화들이 상영되었다.이 영화들은 뉴욕 경계선을 넘어 힙합의 매력을 더했다.1980년에는 세계 젊은이들 중 일부가 힙합문화를 수용했다.미국의 도시 커뮤니티에서는 힙합 패션이 유행했다.Run-D.M.C.뿐만 아니라 아이스 T, 빅 대디 케인, 닥터 드레 등도 애용했던 골드 체인 액세서리와 운동화와 운동화 등을 볼 수 있었다.그 후 퍼블릭·에너지나 KRS1의 부기다운·프로덕션등이 등장했다.

뉴스쿨랩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다.뉴스쿨 래퍼로는 드 라 소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리더스 오브 더 뉴스쿨 등이 있었다.패션은 실버가 유행했어.또 사이즈가 큰 의복과 배기 팬츠(큰 사이즈의 헐렁한 바지)를 골랐고, 심지어는 실내화로 입는 아티스트도 볼 수 있었다.큰 옷을 입게 된 것은 큰 사이즈의 옷을 자녀에게 제공하면 성장하더라도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수 출신지 등으로부터 힙합 발상지인 뉴욕 등 미국 동해안에서의 이스트 코스트 사운드,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서해안의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웨이스트 사이드)와 같은 지역에 따라 나누는 방법이 있다.초기의 이스트 코스트 사운드는 재즈 트랙을 사용한 악곡이 많은 반면 초기의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는 G 펑크라고 불리는 P 펑크 등을 샘플링해 신시사이저 등의 전자음을 도입한 트랙에 갱스터 랩이라고 불리는 갱스터 출신자가 그 라이프 스타일을 가사로 한 랩을 얹는 경우가 많았다.최근에는 사우스(남부)나 미드웨스트(중서부)라고 불리는 로컬 사운드도 등장하고 있다.사우스 트럭은 바운스 비트가 특징이다.힙합의 대중화에 따라 동해기슭에서 갱스터 랩을 하는 자가 나타나기도 하는 등 지역에 따른 분류가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1990년대 무렵부터 동해안을 대표하는 디디(퍼프 대디), 노트리어스 B.I.G. 거느린 배드보이 엔터테인먼트(Bad Boy Entertainment)와 서해안을 대표하는 닥터 드레 , 스눕 도그, 투팍(출신은 이스트 코스트이지만 최성기의 활동 장소는 웨스트 Boy Entertainment)와 서해안을 대표하는 닥터 드레, 스눕 도그, 스눕 도그, 투팍 등이 서로 헐뜯는 서로에게 맞선 아티스트들이 서로에게 위협하고, 투팍(blownback).이 내용들은 랩 가사에도 나타나 갱과 마피아를 포섭, 습격, 발포 사건 등으로 발전했다.동서항쟁은 투팍, 노틀리어스 B.I.G.라는 두 해안을 대표하는 유명 래퍼를 동시에 총격사건으로 잃는 비참한 결말을 자초했다.항쟁은 이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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